뉴 토포그래픽스 (New topographics) Docu

. 서론 (풍경의 개념)

. 풍경사진의 사진사적 고찰

1. 유럽의 초기 풍경 사진

2. 미국의 초기 풍경사진

3. 자연주의 사진과 픽토리얼리즘 포토

4. 근대 풍경사진

. New Topographics와 주요 작가

1. 뉴토포그래픽스 (New Topographics)

2. 뉴토포그래픽스와 미니멀리즘

3. 뉴토포그래픽스의 작가들

. New LandScape

1. 개념예술

2. New LandScape의 작가들

 

 

 

. 서론 (풍경의 개념)

풍경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 경치, 경관, 풍치 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나, 각 시대마다 자연과 대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사유방식이 변함에 따라 풍경에 대한 개념도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

풍경화는 영어로는 ‘Landscape Painting'인데 이것은 원래 네덜란드와 벨기에지방에서 사용되었던 프라만어의 Landskap에서 온 것이다. 이 말이 자연의 경관을 그린 회화 작품과 관계되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의 일이었다. 그것은 회화로서 표현되어진 자연 표상이라는 넓은 의미 뿐 만아니라, 적어도 예술적 장르로서 풍경화가 탄생하였던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들의 시점에 서서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풍경화를 중심으로 생각하면 풍경화가 본격적으로 대두했던 시기는 18세기에서 19세기 초에 이르는 낭만주의 사조에서 이였다.

결국 서양에서 풍경화라는 것은 자연에 하나의 통합을 부여하면서 그 위에 자연다운 외모를 부여하는 것이 된다. 즉 인간이 의식적으로 자연에 질서를 부여한다는 인식적 행위가 우선인 것이다. 풍경화란 인위성에 의한 자연성의 달성이지만, 그 근저에는 자연의 인간화된 이미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에 대한 상상적이고 관념적인 파악에서 17세기에 들어 자연을 현실에 살아있는 인간에게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나타났는데, 이것은 풍경에 대한 사실주의적인 변화로 간주된다.

이러한 배경아래에서 바르비종파가 나타나게 되고 뒤이어 빛을 색채로 포착하는 것을 매개로 하여 형태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비전을 실현한 인상파에 의한 풍경화가 등장한다. 이어 19세기에는 자연미를 예술적 대상으로 하는 일이 당연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개성적인 자연관에 의해 풍경을 포착해 나타내는 것이 허용되었다. 결국 20세기가 되어서 풍경화는 서양 회화의 중심적인 장르가 되고, 자연표상을 주관적인 감정표현의 수단이 되는 가능성들로 개척하게 되었다. 이러한 풍경화의 맥락은 미국 회화사에 있어 19세기 미국 풍경사진이 등장할 무렵 미국 대륙의 풍경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한 일련의 화가들에게 이어지고, 19세기 허드슨강 파에서 20세기 지방주의로 대표되는 이러한 경향은 뉴컬러 풍경사진의 맥락으로까지 연결된다. 즉 풍경이란 자연과 대상에 대한 인간의 인식 방법을 총칭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현시대의 풍경사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전의 개념과 그 기원을 살펴보고 자연에 대한 접근 방식의 차이와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 풍경사진의 사진사적 고찰

1. 유럽의 초기 풍경 사진

자연의 미와 숭고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예술가들을 통하여 예찬되어 왔다. 하지만 서양 미술사에서 르네상스에서 18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는 풍경화는 주로 역사적 종교적 사건의 배경으로만 여겨졌고, 풍경은 예술적 주제들의 계급사이에서 낮은 위치를 차지해야만 했다. 그러다가 전통적인 예술구조의 이완과 낭만주의시대를 거치면서 자연에 대한 개념의 변화로 풍경화가 번성하게 되었고 예술에서 중요한 장르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하여 예술가들은 물질세계에서 다양한 주제들을 찾아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재현하고자 했고, 모든 종류의 풍경-자연적인 것이든 인공적인 것이든-의 정확한 시각적 재현의 욕구는 우선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의 완성을 가져왔으며 19세기 중엽 유럽에서 드디어 사진이 발명되었다.

가까이 접하기 쉽고 대개는 고정적이며 승인된 예술적 매력을 지니고 있는 풍경, 자연, 건축은 초기 사진가들에게 적합한 피사체로 사용되었다. 중경사진에 대한 대중의 기호 역시 초기 풍경사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18세기 전반을 통하여 지형학적 풍경의 유화, 수채화, 동판 그리고 석판화가 유행하게 되었는데, 풍경사진은 장르의 논리적 확장이라는 점에서 뿐 아니라 지형, 역사적 유물, 그리고 이국적 지역을 좀 더 충실히 재현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추정으로 환영을 받았다.

다게레오 타입과 칼로 타입에서 시작한 19세기 풍경사진들은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풍경사진은 1827년 니세포르 니엡가 자연을 가장 충실하게 묘사하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사진을 만들기 위한 감광 물질에 대한 연구 결과로 나타난 <르 그라의 집 창에서 내다 본 조망>이라 할 수 있다. 초기 다게레오 타입의 사진들은 감광물질에 매우 느리게 반응하여 장시간 노출시간을 필요로 하였으므로 주로 건축물과 풍경에 관한 것들이었다. 즉 풍경은 긴 노출에 가장 적합한 주제였고 초기 사진가들은 사진예술에 대한 자각이라기보다는 메카니즘(Mecanism)의 문제로 풍경을 다소 경직된 시각과 진부한 구도로 찍게 되었다.

1940년과 1844년 사이에 다게레오 타입으로 여행지를 촬영한 풍경사진들이 <다게르식 은판 사진사들의 유람(Excursions Daguerriennes)>이라는 시리즈로 파리에서 간행되었다. 이러한 사진들은 새로운 중산계급의 여행자들에게 기념품으로 제공되었고, 그런 여행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앉은 자리에서 세상을 볼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1841년과 1855년경에 칼로 타입 사진가들은 도시풍경, 역사적 이국적 기념물, 시골풍경, 그리고 익숙한 환경에 싫증을 느끼고 있던 유럽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 거칠고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지역들은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1850년대 유럽의 사진가들은 사진이미지의 정교함, 신속성, 객관적 기록성과 복사적 재현성을 이용하여 대중들의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미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풍경사진을 제작하였다. 알부민 종이로 만든 수백, 수천장의 사진이 판매가 되었고, 이 시장을 만족시키기 위한 상업적 출판업자들은 프리랜서 사진가들은 물색하기에 바빴다. 이러한 상황은 결과적으로 예술적인 풍경효과보다는 정보를 구미에 맞게 전달하기 위한 최상의 촬영위치와 조화로운 색조, 적당한 구조를 목표로 하게 되었다. 이런 영상의 대량소비는 또한 영상을 직접적 경험의 대체물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사진을 보는 대중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풍경사진은 때로는 정치적인 목적에 이용되기도 했다. 한 예로 비송형제(Bisson Brothers)에 의하여 알프스에서 찍은 풍경 사진 같은 것은 순수하고 단순한 풍경으로 보이지만 실은 영토 확장을 축하하는 제국주의적 욕망에서 기인한 것이다. 1850년대 말경 인도와 극동지방에서 작업했던 사진가들의 목표도 단지 여행자들을 위한 사진제공이 아니었다. 인도에서 사진은 영국에 식민지의 이국적이고 신비한 풍경, 관습, 그리고 사람들을 보고하는 이유로 영국군대와 통치기구에 의해 후원되었다.

 

2. 미국의 초기 풍경사진

대서양을 건너 미국에서의 풍경사진의 흐름은 유럽과 달랐다. 풍경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고전적 역사가 없는 나라 또는 때 묻지 않은 자연에 대한 독특한 상황을 반영했다. 많은 미국인들은 광활한 숲과 강이 새로운 나라를 풍부함으로 채워 놓은 신의 은총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어떤 이들은 서부 확장의 경제적 가치를 인식하고 사진이 이 생각을 실현 가능케 해 줄 이상적인 도구라는 것을 발견했다.

1860년대 철도회사와 정부기관이 광활한 서부의 미지의 땅을 기록하는 조사 연구의 전반적인 노력에 사진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인식함에 따라 사진은 중요한 도구로 등장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때부터 미국에서의 중요한 사진작업의 방향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개척이었다. 지형과 지질 탐사를 위한 기록으로 사진은 그 자체의 예술성이나 사진가의 자연에 대한 경외감보다 철저히 중립적이고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필요했고, 지도를 그려나가듯이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모습을 장착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칼튼 E 왓킨스(Carleton E. Watkins), 알렉산더 가드너(Alexander Gardner), 티모시 오 셀리반(Timothy O. Sulivan), 윌리엄 헬리 잭슨(William Henny Jackson) 등이 이 시기에 활동한 사진가로 자연을 냉철하고도 객관적인 지질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아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현실의 자연경관을 있는 그대로 극명하게 기록하여 사진 특유의 특성으로 현실 속에 존재감이 아닌 비현실적 서정성을 나타내려 했다. 이 같은 사진가들의 작업은 비록 국가 정책의 일환으로 촬영된 것들이지만 나중에 나타나게 되는 뉴 토포그래픽스(New Topographics)를 예견하고 있는 것이다.

 

3. 자연주의 사진과 픽토리얼리즘 포토

1880~1890년대로 접어들면서 사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그 주요 원동력은 사진이 기록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에 대한 자각, , 예술에 대한 강력한 욕구의 발생에 근거하고 있다. 이들 사진가들은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여러 사진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사진의 심미적 잠재력을 탐구하고, 보다 더 예술적으로 표현되어 회화와 대등하게 보이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예술사진을 표방한 이 시기의 작업은 회화적 효과가 두드러진 사진으로 이어지게 된다.

1880년대에는 자연에서 주제를 구할 것을 주장하면서 자연스럽고 스트레이트(Straight)한 사진 촬영에 관한 생각을 발전시킨 피터 헨리 에머슨(Peter Herry Emerson)이 중심이 되어 농민의 생활이나 농촌풍경에 주제를 둔 자연주의 사진이 크게 유행하였다.

에머슨은 당시의 자연주의와 사실주의 회화에 심취해 있었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미적 개념을 사진을 통해 표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최초로 스트레이트 사진(Straight Photography)으로써 예술에 접근을 시도한 인물이었는데, 사진이 예술이 될 수 있는 것은 자연을 진실 되게 묘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의 첫 번째 사진집 <노포크브로드의 생활과 풍경(Life and on the norfolk Broads)>에 수록된 사진들은 기록적 가치가 있는 농촌 풍경이면서 또한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들이었다.

에머슨의 자연주의 사진의 기본구조는 ‘인간의 시각으로부터 카메라의 시점을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자연의 모방을 위해서는 자연을 가장 진실 되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즉 그는 카메라의 시각을 인간의 시각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애머슨은 사진 이미지와 인간의 시각을 가능한 한 일치시키고자 하였다. 그래서 극단적인 명암대비를 피하고 심도를 화용하면서 후경(後景)과 육안에는 간접적으로 잡히는 피사체의 주변부를 교묘하게 흐릿한 상태로 만들어 놓았다. 에머슨에게 육안이 감지한 이미지만이 유일하며 정당한 이미지였고 따라서 그의 사진들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인상’으로 포착되어 그 눈 속에서 영상화한 현실이다. 이렇게 본원적으로 받아들여진 인상을 사진은 ‘또 다른 단계’로 올려놓는 것이다. 사진은 더 이상 재현의 문제가 아닌 합치와 등가의 문제였다.

에머슨의 자연주의 사진의 활동은 그 자신이 회화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으나 사진이 새로운 표현매체의 예술로 자리 잡는 최초의 사진적 자각이었으며 예술로서의 사진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자신은 그의 이상을 사진이라는 매체가 실현시키기에는 부족하다는 고백을 하며 ‘자연주의 사진의 죽음’을 선언한다.

에머슨이 ‘자연주의 사진의 죽음’을 선언한 2년 뒤, 그의 영향을 받았던, G.Davison을 비롯해 J.C.Annan, C.Job, J.T.Keiley등은 사진을 과학과 기술 제일주의 연구에서 분리시킴으로써 하나의 순수예술로 여기자는 Pictorialism운동, 이른바 영상파 운동을 일으키게 되었다. 그들은 그 후에 A.Horshet Hinton을 중심으로 'Linked Rings‘ 라고 하는 단체를 통해 활동해 가면서 이해의 전시회를 ’살롱(Salon)'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것이 점차 발전해서 오늘날 국제 사진 살롱의 발상이 되었던 것이다.

Pictorialism들은 Hand Camera 발명 이후 사진이 기술적인 면에서 수월해지면서, 사진을 만드는데 필요한 기술과 지식에 대한 의구심을 무시하고 자연의 재현보다는 심리적 상태의 신비로운 것을 향해 대상을 자연의 변형된 사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사진을 회화나 다른 시각 예술처럼 만들기 위해 부드러운 이미지를 의도하는 양상을 띄었다. 그들이 원하는 예술은 자연을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화(Imagination)하는 것이었다. 1990 Hinton "정확한 표현에 의한 것보다 암시적인 것에 의해 자연은 더 완벽하게 재창조된다. “ 라고 하였다. 그들은 암시의 유일한 세계를 위해 자유롭게 인화를 조정하였다. 사진재료들도 종이 위에 직접 조제한 유제를 손으로 도포하여 사용하였다. 이 모든 방법들은 그들의 작품을 ‘영혼의 인상학(Physiognomy on the Sprit)' 이 되게 하기 위한 시도였다. 이렇게 하여 Pictorialist들은 진실로 창조적인 예술가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4. 근대 풍경사진

시대에 따라서 사진 그 자체의 예술성에 대한 의식의 변화에 따라 20세기 전반기에는 물질문명의 발달과 산업화에 의한 도시의 변화에 대한 관심으로 풍경사진이 순수한 자연만을 대상으로 하는데서 벗어나서 새로운 종류의 감수성으로 도시의 생활상 및 풍경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카메라의 시인’이라고 불리는 으젠느 앗제(Eugene Atget)를 흔히‘다큐멘터리 사진의 선구자’라고 한다. 하지만 풍경사진의 역사를 논함에 있어서도 그는 간과할 수 없는 띄어난 사진가이고,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와 함께 사진 본래의 특성인 기록성을 가지고 사진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20세기 풍경사진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19세기 말 회화주의 유파의 활동이 절정에 달해 있을 무렵 파리와 그 주변의 풍경들을 사실적으로 기록함으로서 역사적 관점에서 그 시대의 문화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한편 그 당시 미국의 진보적 사진가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매체의 독특한 속성과 특수성에 기반을 둔 새로운 미학을 모색하게 되고 드디어 사진다운 사진-사진과는 다른 재료로 만들어진 그림들의 표면 질감에 견줄 수 있도록 회화주의자들의 작업 속에서 횡행하던 꾸며진 사진이 아니라 그런 꾸밈이 제거된즉 순수사진(Straight Photography)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여 미국의 근대 풍경사진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안셀아담스(Ansel Adams)등의 사진가들에 주도되었다.

스티글리츠는 초기에는 에머슨의 영향을 받으면서 회화적인 사진들을 발표했으나 점차 사진의 기본 미학을 사실주의로 인식하고 사진의 최대 가치를 스트레이트 사진(Straight Photography)의 순수성으로 정립하였다. 그는 이런 순수사진에 대한 신념으로 사진 분리파를 결성하였고, 미국의 새로운 사진들의 작품을 기획, 발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스트글리츠는 후기에 객관적인 현실에 은유라는 상징성을 부여함으로써 자신의 감정 이입을 꾀한 <Equivalent>라는 제목으로 수백점에 달하는 일련의 구름사진을 발표하였는데 자연의 모습을 자신의 심적 체험과 동등한 등가물로 이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Equivalent시리즈는 풍경의 새로운 시선을 획득한 것으로 그 후에 미국 풍경 사진의 성격을 대상에 있어 회화적이거나 유명한 곳, 특이한 곳으로부터 ‘사진가들의 정신을 건드리는 곳’으로 변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스티글리츠에 의해 시작된, 사진에 있어 고전적인 회화주의에서 탈피하여 사진의 메커니즘을 사진의 기본으로 하여 기록성을 회복하자는 사상은 20세기 사진의 초석이 되어 예술 속에 사진의 존재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사진 분리파가 내건 순수사진 운동을 정립시킨 것은 폴 스트랜드 이였다. 그는 사진 기계적 기록성을 더욱 철저히 강조하여 즉물적인 극한의 한계까지 파고 들어갔다. 그리하여 카메라와 대상사이에 자신의 개입을 최대한으로 배제하고 직접 양자가 밀착된 관계를 성립시킴으로써 실물 그대로를 화면에 옮겨 놓은 것 같은 재현 효과를 거두려 하였다. 그의 작품 속에서 오직 서정적이라고 설명될 수 있을 듯한 희귀한 사진적 특징이 담겨 있다. 그는 항상 그 장소, 그 지역의 거주민들에 대한 감정을 추구하면서 끓임 없이 일관성 있게 인간의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그가 시도한 즉물사진은 그 후 20년대에 독일의 표현주의의 반동으로 일어나 신즉물주의 예술사조의 일환으로 알메르트 렝커 파취(Albert Renger Patzsch)를 비롯한 여러 사진가들이 추구했으며 미국에서는 에드워드 웨스턴이 그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다시 웨스턴에서 그의 사진의 맥은 안셀 아담스로 이어지고 또한 새 세대의 사진가들에게 계승되어 이제는 미국 풍경사진 전통의 한 갈래를 이루고 있다.

순수사진의 광학적 기록성을 신면으로 삼고 즉물 사진의 세계를 이어 받은 에드워드 웨스턴은 육안의 시각적 한계 밖에 있는 리얼리티(Reality)를 과학적인 기계의 눈으로 수렴하려 하였다. 그의 사진은 모두가 미국 서부 지방의 대자연을 주제로 찍은 것인데 이런 주제들을 웨스턴은 기하학적인 조형으로 시각적인 통일을 꾀하는 동시에 대상을 존재론적 입장에서 파악하였다. 이것은 대상을 인간 본위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그 자체의 소우주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사진에서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본질과 존엄성, 생명적인 신비감이 드러난다.

1932, 웨스턴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던 다수의 청년 사진가들이 그와 더불어 ‘f64 그룹’을 조직하였다. 광학적 용어를 그 이름으로 내건 이유는 그들이 전경 및 후경 모두를 최대한 또렷한 상으로 보여 질 수 있도록 조리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있어 리얼리티를 회피하는 것들은 ‘순수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들의 경향은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유행하던 회화적 사진가들의 연약하고 감상적인 스타일에 대한 격렬한 저항이었다. f64 그룹은 해체된 후에도 순수파 사진을 대변하는 편리한 상표가 되었다. 안셀아담스 또한 이 그룹에 속하는 사진가였다. 안셀아담스의 사진은 커다란 스케일과 웅장한 자연미가 조화를 이룬 거의 완벽한 풍경사진들로 자연의 존재감과 위대함을 경외심을 갖고 찬양하고 있다. 그의 사진들은 희귀한 감수성, 직접적이고 무한한 정직성을 담고 있다.

아담스는 모든 유형의 카메라를 사용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기법들을 시험하였고 자신의 독자적 기법인 존 시스템과 더불어 노출 및 현상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아주 창의적이고 실제적인 기준을 확립하였다. ‘감광도의 원리(Sensitometric Principles)'에 바탕을 두었더 그 기준은 그 후의 풍경사진가들이 사진재료를 정확하게 다룰 수 있도록 해주었다.

아주 특별한 선예도에 고조된 광선의 효과를 이용한 풍경사진을 만들어 낸 아담스는 풍경을 인간적이고 가장 미국적인 사실주의 시각에서 바라다 본 것이다. , 그의 초기사진은 지정학적 사진가들과 비교해 볼 때 사진적 완성도와 예술적 심화면에서 그 차원을 달리하고 있으나 정신적 바탕을 계승하여 미국의 개척정신의 미화와 미국 찬가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스티글리츠의 스트레이트 사진에서 시작된 미국의 근대 풍경사진의 이념은 앞에서 언급한 사진가들과 f64 그룹 그리고 농업안정국 소속의 사진가들에 의해 현대 풍경사진의 뉴토포그래픽스와 뉴 컬러 풍경사진의 기본개념으로 이어지게 된다.

풍경사진의 역사는 스티글리츠의 이퀴밸런트의 상징적 수법을 발전시켜 더욱 폭 넓고 심오한 종교적 상징화를 추구했던 마이너 화이트(Minor White)를 정점으로 현대적인 시각으로 변모되어 왔다. 그리하여 현대 사진에서의 심상적(心象的)풍경은 풍경 자체의 현실적 의미나 가치에 미련을 두지 않고, 소재가 무엇이든 사진가의 내면과 만나 새로운 가치를 발휘하였다. 이것은 아름다운 풍경이든 보잘 것 없는 풍경이든 그것이 문제가 아닌, 종래의 가치기준에서 풍경으로 다루어질 수 없었던 소재를 수용하여 객관적으로 의미를 파악하려 하였다. 현대 도시의 몰인간성, 부자연성 및 인간적 정서가 결여된 비인간적 공간이 자아낸 추상성이 주제가 된 새로운 지형학적 사진(New TopoGraphics)이 출현 한 것도 이 시기이다.

 

. New Topographics와 주요 작가

1. 뉴토포그래픽스 (New Topographics)

20세기가 되면서 미국은 산업화의 길을 걷게 되고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심화되어 자연의 운명은 인간에 의해 결정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자연을 새롭게 평가하고 그것을 대상으로 하는 풍경사진 제작에 새로운 혁신이 일어나게 되었다. 1970년대의 미국 사진가들에 의해 시도된 일련의 움직임으로 이는 역사속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되는 현대사진의 새로운 장르로 윌리엄 젠킨스(William Jenkins)가 기획하여 조지이스트만 하우스(George Eastman House)부설 국제 사진 박물관에서 <New Topographics:Photograps of a Man Altered Landscape>라는 타이틀로 전시회가 개최 되었다. New Topographics전이 사진사에 있어서 특별히 주목받게 된것은 66년에 나탄 라이언에 의해 기획된 <Contemporary Photograpers:Toward a Social Landscape>전이 60년대를 대표한다면 70년대의 ‘New Topographics'라는 용어는 70년대의 주요 사진적 태도를 종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New Topographics라는 뜻은 새로운 지형학이란 의미로 지도처럼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지표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용어는 넓은 조망, 스탠드 카메라 그리고 측량, , 형태의 느낌을 갖는 19세기 풍경사진과 연관 지울 수 있으며 또한 당신의 보존과 생태학에 대한 이슈(Issue)를 반영하고 있다. 서부 개척시대의 기록사진처럼 혹은 개념 예술가나 대지 예술가의 작업 결과나 아이디어를 보여는 순수한 기록 사진, 혹은 자료 사진의 역할처럼 냉정한 기로자임을 자처하는 것이 New Topographics작가들의 기본적 태도이다.

참여작가로는 로버트 아담스(Robert Adams), 루이스 발츠(Lewis Baltz), 조 딜(Joe Deal), 프랭크 골크(Frank Gohlke), 니콜라스 닉슨(Nicholas Nixon), 존 스코트(John Scott), 스티븐 쇼어(Stephen Shore), 헬리 웨셀(Herry Wessel) 그리고 독일인으로서 버나드 베허(Bennhard Becher), 힐라 베허(Hilla Becher)부부등 열명의 사진가 들이었다. 젠킨스는 전통적인 풍경사진의 낭만적이고 상징적인 스타일을 벗어나 비개성적이고 현실적인 객관성을 가지고 급진적인 새로운 방식으로 현대의 풍경을 표현했던 사진가들을 선택했으며, 형이상학적인 자연의 시에 반대되는 입장으로서 토지 측량가의 토지에 대한 미적인 무관심을 암시하듯 이 전시면을 ‘New Topographics’라고 붙였다.

전시회의 부제인 ‘인간에 의해서 바뀌어진 풍경’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인간의 자연파괴에 의해서 변질되어 가는 미국의 풍경을 지지학(地誌學)의 조사를 위한 측량과 같이 감정이입을 배제하여 중립적인 시각으로 촬영해 나가는 것이 Topographics사진가들의 기본적인 스타일이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갖고 탐험이나 여행에 의해 촬영하였던 19세기의 풍경사진가들과 자연보호, 환경보호의 차원에서 또는 미학적인 관점에서 촬영해온 사진가들의 작품속에서는 전통적으로 경탄과 찬미의 대상인 자연의 숭고함, 장엄함이 표현되어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더 이상 이러한 자연에 대한 표현은 무의미해졌으며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미국의 풍경사진은 1970년대를 통해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이것이 곧 New Topographics로 이어진 것이다.

지형학적 사진가들의 사진은 낭만적인 자연의 종말과 함께 옛 신비스로움으로의 자연과 인간사이의 경계가 선명하게 나누어져 있지 않고 허물어져 가는 것을 그리고 있다. , 자연경관에 대한 인간의 침혜를 표현하고 있는데, 그 표현방법에 있어서는 대상에 대해 어떠한 변형도 주지 않고 직설적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작가의 개입이 절제된 그래서 익명성이 강조되는 사진을 제작한다. 그들 작업의 기본적인 특징은 바로 객관성에 있는 것이다.

젠킨스(Jenkins)는 서문에서 전시회의 사진들은 “주제를 바라보는데 있어 사진가의 영향이 미니멀 하다는 의미에 있어서, 최소한의 영향을 가지고 기능 한다..... 개성으로서의 사진가들은 그들의 작품 속에 개입되는 작가의 판단이나 제안의 흔적을 최소한으로 막기 위해 커다란 아픔을 수반한다. 그들의 관점은 비평적이라기보다는 인류학적이고 고고학적이며, 예술적이기보다는 과학적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들 New Topographics사진가들은 주제 면에서 워커에반스나 에드워드웨스턴, 로버트프랭크에 이르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처럼 미국의 자연풍경에 대한 인간의 침해에 초점을 맞추었으나 표현방법에 있어서는 차이점이 크다고 하겠다. 그들은 우선 대형카메라의 메카니즘을 통해 대상과의 사이에 객관적인 시간과 거리를 둠으로서 자칫 화면에 끼어들기 쉬운 사진가의 감정이나 직관을 배제하고 있으며, 대상과의 거리를 두고 촬영함으로써 앵글에 따른 화면의 변화와 한 두 스텝 옮김에 따른 이미지 구성의 변화를 줄인다. 그리고 한 사물이 다른 사물에 비해 두드러지지 않으며 정보의 양을 많이 담을 수 있는 원거리 촬영을 함으로서 가장 단조로운 이미지가 가장 탁월한 이미지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출시켰다.

이들이 찍은 사진은 소위 풍경사진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들은 풍경사진의 개념조차도 바꾸어 놓은 셈이다. 이제까지 풍경화나 풍경사진은 사람에 의해 변형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순수한 풍경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부리내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사진은 원래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새 땅을 일궈 정착을 시도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의 부산물도 사진의 소재가 되어야 함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 있어서 자연경관 그 자체는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왔고 그에 따른 사진가들의 시선도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New Topographics에서는 사진가들이 인간에 의해 변형되고 훼손되어 가는 자연과 환경에 대하여 무기력하게 보일정도로 순응하고자 하는 태도를 볼 수 있다. 이러한 것이 때로는 아름답게까지 보이기도 하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인류의 종말을 고하는 세기말적인, 묵시록적인 아름다움으로 생각될 수 있다. 이들의 사진적 의도는 결국 대상을 지적이고 냉철한 태도로 당당히 기록하여 인위적 경관만으로 가득하 있어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을 구별하기 어려운 현대 미국 풍경에 대한 반성과 자각을 꾀하고자 하는 것이다.

 

2. 뉴토포그래픽스와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은 1950년대의 추상표현주의의 개인적이고 관념적인 성격에 대한 반발로서 출현하였지만, 근본적으로는 다다이즘처럼 기존의 전통회화와 조각이 지녔던 허구적 공간에 대한 부인으로서 출발한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에 강력하게 진행되었다. 미니멀리즘은 작품전개에 있어 4가지의 구조적 특성을 지닌다. 첫째, 탈허상화를 위한 시도로써 있는 그대로 사물의 명석함을 드러내는 순수한 대상세계로 초점을 맞추어 3차원의 물체성을 띤다. 둘째, 이러한 3차원의 순수한 대상은 전통회화와 조각이 내용으로써의 중심을 두려고 했던 내부성에 대해 부인하고 철저히 외부적인 실재성에 관심을 두며 비내부성을 주장한다. 셋째,관계적 구성방식을 피하여 중성화시키려는 의도로써 반복성을 띤다. 넷째, 미니멀리즘은 공간적확장과 환경적 상황을 이용하여 관람자로 하여금 주위 환경을 의식하게 함으로서 스스로 존재를 확인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러한 미니멀리즘의 특성에 비쳐 젠킨스가 전시서문에서 그들의 작품들이 미니멀함을 주장한 것은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니멀리즘의 맥락에서 자주 거론되고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베허부부의 전시 참가에서 이 전시를 미니멀리즘 하에 읽혀지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

 

3. 뉴토포그래픽스의 작가들

① 로버트 아담스

○ 로버트 아담스의 사진적 배경

로버트 아담스는 안셀 아담스의 사진에 영향을 받아 마흔 세 살에 사진을 시작하였고, 칼튼 E. 왓킨스와 티모시 오설리반의 사진적 기록의 묘사성과 직접성, 솔직하며 단순한 것들을 표현하고 있는 다큐멘타리 스타일과 유사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안셀 아담스 사진에서 나타난 더럽혀지지 않은 자연의 천국 같은 사진들은 사실상 또 다른 세계, 즉 ‘사라져 버린 세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변해 가는 자연을 통해서 불규칙하게 뻗어 가는 교외, 산업화, 공해, 그리고 인구과잉에 의해 점점 위태롭게 되어 가는 환경 속에서 고향인 콜로라도 주를 비롯하여 서부 전역을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아담스는 사진으로 전향하기 전에 1965년 남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같은 해 그는 처음으로 사진기를 갖게 되었고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다. 1970년 이후부터는 사진에만 전념하였으며, 국내에서 주목받았던 많은 사진집을 출판했고,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자주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1975년 조지 이스트만 하우스에서 열린 중요한 <새로운 지형학 (New Topographics)> 전에 참가하였고, 구겐하임과 NEA(Nathional Endowment for Arts Fellowships) 지원금을 모두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뉴옥 캐스텔리 그래픽스에서 여러 번의 개인전을 가졌으며, 이때부터 그의 사진은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 로버트 아담스의 중립적 시각

현대는 모든 것이 이미 인공적으로 조성된 것이어서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을 구별하기가 곤란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고전적으로 다가오는 아담스의 풍경사진은 단순한 아름다움으로의 복귀하고자 웅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 서부 지방의 광활한 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산업의 모습을 불가분한 관계로 인식하면서 중립적 입장을 띠고 있다.

아담스는 서부의 풍경을 통해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했던 안셀 아담스(Ansel Adams)와는 달리 서부를 대상으로 택하여 사진을 찍으면서 추구하였던 것은 인간의 생존을 위한 자연과의 투쟁에 대한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표현 형식면에서 그의 사진과 유사한 전례를 찾는다면 서부 개척시대의 서부 탐사 기록 사진가였던 오설리반과 잭슨을 들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서부를 조사하기 위해 탐험을 했고, 그 사진은 실제 대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마치 그러한 소재가 사진가의 개입 없이 스스로 네가티브 위에 찍혀진 것과 같아 보인다. “하이웨이 옆에 나뒹구는 개뼈다귀, 진공 청소기, TV, 인형, 카페트, 강가에 버려진 깨진 콘크리트 더미, 망가진 비행기의 꼬리 부분, 악취 나는 공업용 폐수 등 땅 표면의 디테일 뿐 아니라 그 안에 분명히 보이는 혼란의 형태를 보여주고자 함이다” 라는 아담스의 말처럼 그의 사진은 인간이 ‘살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자연을 상대로 저질러지는 현상을 과장하지 않고 정확하게 감정을 절제하면서 냉정한 자세로 나열만 하고 있다. 감정적으로 유리되고 말이 억제된 그의 평범한 표현과 탐구적 스타일로 일관된 사진은 피사체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촬영하기 때문에 어느 피사체 하나도 두드러져 보이지 않고 화면 안의 많은 요소들이 고만고만하게 가득 들어있다. 이것은 화면 안의 모든 대상들이 동등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그의 사진들은 건축물과 장소와 기후에 관하여 증거가 될만한 자료를 필요로 하는 도시 계획자들에게 유용한 기록들이라고도 볼 수 있다. , 그의 사진들은 실질적인 해석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으며 그 암시가 일단 받아들여진 후에는 놀랄 만큼 많은 사실들을 인식시켜준다.

결국, 아담스의 사진은 원래의 자연 풍경을 유지하고 모호해 나갈 것을 주장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변화를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진에서 나타나는 중립적인 입장은 시각의 냉정함마저 느끼게 한다.

 

○ 로버트 아담스의 사진

그의 사진들은 하이라이트 부분이 거의 다 날아가 버린 하이키톤으로 인화되어 있는데, 이러한 인화 작업은 그 현장과 분위기를 밝게 묘사하려는 의도에서 보다는 미니멀리즘에 있어서의 3차운의 물체성(특수오브제)에 해당되는 것으로 관람객 들에게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 보고 거기에서 그 환경을 파괴한 범죄 사실을 찾아내도록 하는 효과를 끌어내기도 한다. 이와 같이 아담스의 사진은 객관적이고 비개성적인 사진적 접근과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그의 스타일이 엄격해서 형식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그는 인화지로부터 대부분의 사진가는 상상도 못하는 톤을 이끌어 내기도 하는데 이렇게 표면의 재질감과 디테일의 표현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관객의 주의를 유도한다는 점에서도 미니멀리즘과의 깊숙한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그의 사진이 중요하면서 때로는 풍자적인 요소는 희거나 검은 공간 속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거의 감지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관객은 그의 작품을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안된다. 자연계의 미묘한 미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의 증거를 제시 해 주는 그의 작품상 구도의 뉘앙스는 이런 이유로 해서 느껴질 수도 있고, 또한 감상되어질 수도 있다.

분명 아담스는 풍경을 작품 제작의 단순한 무대로만 생각하고 있는 다른 사진가와는 구별이 되며, 그의 작품 속에는 미니멀리즘적인 요소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기존 풍경사진의 지위를 변화하게 하고, 작가의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해 애썼다.

 

<<사진 기법>>

아담스의 사진 톤은 대부분의 이미지를 가장 밝은 부분과 가장 어두운 부분으로 표현하는 극단적인 계조 범위를 가진다. 전시한 모든 사진 속의 하늘 색조를 같은 회색으로 만들 수 있는 주의 깊은 인화작가이다. 동시에 그의 구성은 선이 교차되지 않는 부정형의 가장자리에서 감정이입이 없는 미묘함을 나타낸다.

 

○ 사진집

<White Churches Of The Plains>-Examples From Colorado-1970

<Architecture and Arts Of Early Hispanic Colorado>-1974

<The New West>-1974

<Denver>-1977

<Prairie>-1978

<From The Missouri West>-1980

 

 

② 루이스 발츠(Lewis Baltz)

루이스 발츠는 현대사진에서 가장 인상적인 내용과 독특한 형식으로 사회의 환경적 이슈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허가된 공간, 집들, 축조된 건물들, 도시 주변의 풍경을 기록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인간의 행위는 드러나 있지만 인간의 모습 자취를 감춘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자연작가들이 사람이 없는 풍경을 취하는 것은 최근의 절박함보다 오히려 오랜 회화의 전통에 철저하게 초점을 맞추어 환상과 현실 도피성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사진에서의 주제 전달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그의 목적을 이루며 모순된 정보로 지적인 힘과 시각에 긴장과 형식적인 요소, 빛과 세련된 미를 포함시킨다. 작품 중 다수는 중립적 법칙은 목표로 하지 않고 객관성의 가능성을 감소시키는 사진도 있다.

그가 암시하고 있는 것은 회의적인 풍경을 투영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작업에서 경제적 팽창주의와 미국인의 꿈의 결과를 발견하게 되고 예술과 삶의 충돌이 혼재하고 있음을 볼 수있다. 사진의 아름다움과 주제에 묘사된 가혹함의 표현을 볼 때“Concerned Photography(관심을유도하는 사진)”를 찍는 사진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루이스발츠의 사진적 관점

루이스 발츠는 메릴랜드(Maryland) 사진들에 대해서 논하기를 “나는 이 사진들이 메마르고 그리고 감동적인 내용이 없기를 바란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는 Robert Adams와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특징은 객관성에 있으며 자연경관에 대한 인간의 침해를 표현하는데 있어 대상에 대해 어떠한 변형도 주지 않고 직설적으로 묘사하고 작가의 개입이 절제된 그래서 익명성이 강조되는 사진 제작에 힘쓰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루이스발츠의 사진

루이스 발츠는 상업적인 택지 개발업자를 대상으로 한 서부풍경의 이미지를 사진에 담았다. 그의 사진 “Industrail parks near Irvine, California, 1975" 는 엄밀하게 보면 건축을 정면으로 찍는 미니멀리스트이다. 그의 사진 시리즈 ”Park City, 1980" 에서는 국가의 가장 큰 스키장 계획을 기록하려고 시도했고, San Quentin Point, 1982-1983"(SQP)는 사진의 입장을 중립에서 개입으로 미학적 이전을 제시해 준 작품이다.

 

. Park City #95 (공원도시) 와 같은 작품에서 드러난 산업적인 공원과, 주택개발등은 아담스가 가졌던 이미지들 보다도 훨씬 황량하고 이질적임을 알수 있다. 그러나 아담스처럼 발츠는 그의 ”Industrail park #51 (산업도시)”에서 보여주듯 그가 선택한 주제로부터 분명한 미를 얻기에 이른다. 그는 사진을 통해, 현실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고 있는데, 그것은 작가의 주관과 서술을 피하고 제작과정의 극소화를 통한 조형요소 본질로의 환원을 시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 San Quentin Point- SQP는 마린(Marin)군에서 가장 미개발된 장소의 하나로 조잡하여서 돌과 쓰레기와 잡초로 덮여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미개척지로 남아있었다. 발츠의 사진은 마른 잡초, 나무상자 파편, 고여 있는 웅덩이, 부서진 병과 캔, 그리고 알 수 없는 물질들로 뒤덮인 외딴 곳의 작은 지역에 초점을 맞춘다. 또 다른 사진들에서도 애환의 새들, 땅 파는 기계가 진흙에 남긴 자국, 타버린 목재, 전선으로 감긴 세라믹 파이프 조각, 전선관의 코일, 옷자락 등을 기록한다. 그리고 강으로 가는 마지막 도로와 악취나는 정유공장 및 호화스런 생활 속에 끼여있는 황량한 소유지를 기록할 때 그는 땅 위에 있는 이미지들에 필요한 부분만을 찍었다.

발츠는 초기의 지형학에서 발견되는 객관성을 토대로 이 작품의 메시지를 강하고 전달 하고 있다.

 

. West vic, East Esquimalt, Songhees,saanich (이름들은 그 지역의 길과 구역을 지칭)”등의 제목을 가진 새로운 사진 시리즈는 1986 2월 이튼, (eaton/shoen) 갤러리에서 전시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벤쿠버에서 촬영되었는데 그가 담은 사진들의 내용은 너무 평범하다. 어느 곳,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어서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장소들이다. 이 전시회의 대부분의 사진들은 광활함을 보여준다.

*Bern(포장 안된 길섶)- 응고된 진흙덩이를 찍은 사진과는 달리 빛에 대한 관찰을 자세하게 기록하였다.

○ 사진집

<Industrail parks near Irvine, California>-1975

<Park City>-1980

<San Quentin Point>-1982-1983

 

 

○로버트 아담스 VS 루이스 발츠

 

록키산맥의 골짜기의 불규칙적으로 전개된 도시 변두리 주택을 찍은 전혀 매력없는 아담스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보아 문명이 자연을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아담스의 작품은 더욱 아름답게 표현되고 때로는 낭만적이기도 하다. 그 반면에 발츠는 캘리포니아 어빈 근처 공업단지의 외관에 대한 몽드리안식 형식미에서 개척지의 가옥, 길가의 식당과 인기가 있는 골짜기에 더욱 원경적 사진으로 옮겨갔다.

 

이러한 새로운 방향은 최소한의 왜곡과 중립적인 외관이라는 뉴토포그래픽스 전의 근본적인 가정에 대한 하나의 도전으로 해석될 수 있다.

 

 

③ 조 딜 (Joe Deal)

Deal은 캔자스주의 Topeka에서 1947년에 태어났습니다.

Joe Deal의 사진들은 1975년 조지이스트만 하우스 부설 국제 사진박물관에서 열린 New Topographics 전의 참가한 동료들과 더불어 사진사에 중대한 관심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사실적으로 기록한 사진들을 그것으로 함으로써 미국 문화의 지도를 만들었다. 젠킨스가 서문에서 그의 사진을 " 중대하거나 인류학, 예술적이기 보다 오히려 과학적이다 "라고 하였다.

New Topographics전의 성공에 이어, Deal은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San Andrea Fault Line를 따라 세련되지 않은 삶을 서류로 증명한 포트폴리오인 Fault Zone를 완성하였다. 이러한들 엄하고 추상적인 이미지들은 자연적인 것과 인공 세계사이의 불확실한 저울질을 한다. 딜의 작업은 이 불안한 균형을 전달한 전후관계 정보에 밀집 시킨다 : 공사중의 주택 단지들에 굳어진 벽들의 기하학적인 모습; 그리고 사막 식물의 엉킨 모습; 비포장도로와 전선들의 선을 가로지르는 것; 뒷마당들을 재 구성; 그리고 매일 삶의 세속적인 허드렛일들에 그들을 점령한 사람들.

그의 카메라를 통하여, 이 단순한 것들은 더 흥미로운 것이 된다. 직접 내용을 기초가 되는 것은 인구의 풍자와 활동적인 단층선과 망가지기 쉬운 사막 생태계에서 건설 굉음이다.

New Topographics전에 있어서 딜은 관람자가 문제에 대한 그들 자신의 대답들에 이르도록 하고 이미지들을 반문합니다. 그의 작업은 뉴멕시코에서 캘리포니아주에 걸쳐 새로 개발된 교외 주택 단지의 풍경을 하이 앵글로만 촬영하였다.

“하늘이나 지평선의 위치의 변화를 없애고 프레임 가득 땅만을 담아 어느 사진이나 시각적으로 유사한 공간을 만들었고, 스케일의 지침이 될 만한 익숙한 증거물을 없애고 순수하게 지표면 위에서 무엇이 이루어지고 있나를 보여주고자 했다.” 라고 젠킨스는 그의 사진의 의도를 설명한다.

 

 

④프랭크 콜크

콜크는 과거에서 훼손된 지역을 구체화 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The Altermath(여파)” 시리즈는 폭풍(tornado)으로 인해 콜크의 고향인 ‘wichita falls'지방이 파괴된지 1년후에 있었던 복구 작업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의 위치를 동일하게 사용하여 전후의 결과를 기록했다. 콜크의 사진적 접근은 저널리즘적인 기법을 반영한 것이라 할수 있으나 그의 형식은 루이스 발츠의 구성과 비슷하다. 그러나 발츠는 예리하고 적극적으로 개발 건물 혹은 현존하는 건물을 기록한데 반해 콜크는 인간에 의해 훼손된 주제를 자연스러운 관점으로 기록한다. 콜크의 좀더 이후의 작품은 1980년 “성헬렌”섬의 화산분출 후에 일어난 참상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이들은 대개 단일 이미지와 또한 폭발과 열의 직접적인 영향에 대해 기록하고, 동시에 인간이 자행한 산의 훼손으로 인한 파괴, 훼손 전후에 일어났던 도로 붕괴와 도로 건설을 비교하다. 그의 작품에서는 사회학적이고 환경적인 범주를 포함하고 있지만 동시에 신중하게 미를 조화시키고 있다. 또 ’clear water' 시내 배수에 대한 사진은 장대한 산의 규모와 산에 해를 가한 상처에 기괴한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산허리에 훼손되고 쓰러진 나무층의 정돈된 양식이 인간에 의해 철저하게 변화된 배경을 담고 있다.

콜크의 사진 특성은 완전히 절단되어진 지역, 즉 파괴로 인해 훼손된 지역에 나무가 다시 자라게끔하는 이질성과 화산으로 훼손된 나무를 벌채하여 파내는 것에 대한 그의 동질성은 미묘한 논쟁과 기록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예술성과 그의 이념을 결합하여 그 둘은 동등한 가치로 부여하고 작품에 기록이상의 이념을 타당성 있게 제시한 사진가라 할 수 있다.

 

 

⑤헬리웨셀

 

 

⑥버나드 베허와 힐라 베허 (Bennhard and Hilla Becher)

New Topograpics 전에 참가한 유일한 독일인으로서, 베허부부와 그 전시의 다른 사진가들이 당시에 갖고 있던 미니멀리즘적이고 개념적인 사고에 있어서는 유사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다른 사진가들과는 차이점을 갖는다. 이 이유로 대부분의 사진가들이 촬영한 대상은 도시 주변의 개발과 지방의 건축물들에 집중적으로 할애되었던 반면, 베허 부부의 사진은 초기 산업시대에서 출현한 여러 산업 구조물이 기능과 효용가치의 상실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따라서 베허부부와 이 전시의 다른 사진가들과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특유한 주제의 선택, 유일한 유럽인으로서의 참가 그리고 단일 작품에 비교되는 복수 이미지들의 사용’ 등을 고려해 보면, 거의 관련이 없어 보이는 경향이 있어, 이 전시에서 베허부부의 언급은 큰 중요성을 띄지 않는다.

 

⑦스티븐 쇼어

 

⑧니콜라스 닉슨

 

 

. New LandScape

1. 개념 예술

1966년경에 미니멀리즘이 미술계에 확립되면서 동시에 다른쪽에서는 그것에 대한 뚜렷한 반작용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소위 ‘탈미니멀리즘’ 혹은 후기 미니멀리즘이라고 야기 되는 미술운동이 시작되는데 이러한 미술의 경향에는 Process Art(과정예술), Land Art(대지예술), Body Art(바디아트), Video Art(비디오아트), 퍼포먼스등이 이 있다. 이들은 전통적 미학의 형식에 대한 부정으로서의 미술 작품이기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의 개발, 미술의 새로운 본질 추구, 또한 만들어진 물질적 대상물로서의 작품보다 그것을 위한 의도로서의 아이디어를 중시하는 빗물질화, 비대상화의 시도등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미니멀리즘 이후 60년대 후반과 70년대에 걸쳐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개념주의 미술운동은 당시 지배하고 있던 기존의 예술적 가치 체계를 반발한 작가 집단의 ‘반예술’적인 움직임이었다. 전후 서구 미술계를 풍미했던 추상미술이 극단의 형식성과 물질성 추구의 환원적 논리로 심화되어 가고 또한 예술품이 ‘물질’로 한정지어 버렸음을 비난하며, ‘예술=개념’이라는 대안을 제시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개념 예술에서 기호나 문자등의 빗물질에 대한 표현양식을 가르키지만, 넓게는 퍼포먼스와 그 기록으로서의 사진, 혹은 지도, 비디오 등에 의한 표현도 포함된다. 그들의표현양식은 전달매체중에 특히 언어와 사진이 주된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개념예술에서 사진은 그것의 형식적 조직, 표면적 외양, 표현능력등을 음미하게 하는 귀중한 Object가 아니라, 조직된 사고의 기호나 지표로서 기능을 한다. 개념 예술가들은 귀중한 대상의 영역으로부터 예술을 구제할 방법을 모색했고, 사진은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개념예술가들은 문화적 메시지 전달체로서 언어를 조망했던것과 같은 시각으로 사진을 조망했다.

 

2. New LandScape의 작가들

① 존팔 (Jhon Pfahl)

존팔은 지금까지의 사진가 중에서 특이한 사진가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을 3년에서 5년을 주기로 끊임없이 변화시키고 있다. 존팔은 70년대 ‘젊은 낭만주의자들’로 불렸던 사진가이다. 68년부터 컬러 작품을 찍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뉴 컬러의 선구자 중 한사람이다. 1978년 변화된 풍경을 주제로 로체스터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가졌고, 이어 1980년에는 조망창을 주제로 역시 뉴욕의 로체스터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1983년에는 발전소들을 주제로 역시 뉴욕에서, 1986년에는 나이아가라 강과 이리 호에서 온타리오 호까지의 폭포들이라는 주제로 나이아가라 대학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이러한 작업과정으로 그는 미국의 역량 있는 현대 컬러 사진작가로 인정되어 뉴컬러 포토폴리오 전에도 참가함으로써 명실공히 수준높은 컬러 사진작가로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그의 사진 작업은 70년대 중반까지가 초기, 80년대 초까지가 중기, 80년대 말이 후기로 구분된다.

 

70년대 초부터 시도되어 1978년 뉴욕 로체스터의 비주얼 스터디스 워크숍 화랑에서 처음 가졌던 개인전에 제시된 “Alterd landscape”이라는 주제로 ‘새로운 지형학적 사진’ 전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974년에서 78년에 걸쳐 제작된 이 작품은 대지위에 줄이나 테입, 또는 레이스 등으로 드로잉하여 풍경에 개념을 세워 설치 또는 행위로써 표현한 작품이다.

 

사진상에 나타난 그 착각들은 풍경 자체로 유도하는 구심점을 만들고, 인간에 의해 마음대로 자연을 변형시킬 수 있다는 인간의 역량 혹은 가능성을 제시해 주기도 하고, 이러한 가정에 의해 인간들이 마구잡이로 자연을 훼손시킬 가능성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나타난 것으로 돌이켜 생각할수도 있다. 이 시도는 자연에 잠재한 아름다움을 개선하여, 전원풍경을 제한된 카테고리 속에 압축시켜 하나의 시각현상을 완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사진은 모두 컬러 사진이면서도 얼핏보면 색채에 대한 배려를 전혀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주어진 선들의 색채 때문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찍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자연속에 첨가한 추가물들은 코믹하게 배치되어 원근법이 거꾸로 되는가 하면, 파도의 물결이 레이스의 물결로 이어지기도 하며 땅덩어리가 마음데로 분할되기도 한다. 이는 어찌보면 신의 창조물을 마구 변형시키는 불손한 태도를 나타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변화된 풍경이 제작되던 시기의 예술계의 전반적인 상황은 60년대 말엽부터 70년대초는 예술계의 전반적인 상황으로 볼때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되어 한 시기 동안 위세를 떨쳤던 개념미술은 20세기 초에 비롯된 모더니즘의 역사를 그 극한까지 몰아갔고, 시대적 조류에 의해 새로운 미술 경향의 탄생을 자극하였던 시기로 변화된 풍경은 60년대 말 미니멀아트의 발전과정에서 생긴 대지예술의 한 부퓨로서 이해된다. 대지예술 혹은 대지미술은 국제적인 예술로써 Land Art Earth Art로 불리기도 하며 개념예술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존팔과 대지예술가들과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대지 예술가들이 행위와 그 과정을 중요시 하며 사진은 단순한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에 반해서 존팔은 완성된 사진의 질을 우선시 하며, 사진적 맥락 속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시 비주열 스터디스 워크숍 화랑에서 1980년에 발표된 “Picture window”은 창을 통한 풍경사진이다. 창의 창살과 블라인드 커텐, 그리고 유리창을 프레임에 의해 분할된 다중 영상으로 보여줌으로써 다중매체 영상을 환기시킨다. 시카고파 사진작가들은 한 화면에 여러 매의 사진을 붙여 만들었지만 그는 주어진 프레임을 통해 화면을 다중영상으로 분할 시킨 것이다. 이 수법은 극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어떤 경우는 마치 노출이 부족한 채 찍힌 슬라이드가 벽에 투영된 것처럼 보여주기도 했다. 과거 19세기를 전후한 많은 풍격 사진작가들이 보여 주었던 풍경 사진은 항상 직설적이었고 내면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바로 이 점에서 진일보하기 위해 회화적인 모방성을 능가하고 사진을 찍기 위한 수단으로 이 수법이 시도 되었을 것이다.

 

1983년 뉴욕의 프리듀스-오도버 화랑에서 전시한 “Power places"이라는 작품은 자연풍경 속에 댐을 삽입한 것이다. 넓은 대지 위에 우뚝 솟은 발전소와 구름 사이로 퍼져 나가는 빛이 미국적 자연의 광활함과 그 가운데 위치한 발전소 사이에 묘한 대비를 이루며 무엇인가를 말하려 하는 듯하다. 그는 사회적, 도덕적인 문제와 심미적인 과제를 구별하지 않았다. 인공과 자연도 구별하지 않았다. 아름다움과 참혹함을 합쳐서 사진으로서 흡수해 버렸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진은 우리들의 마음을 도려내는 듯 한 강렬한 힘으로 침투해 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보면 댐은 단순하고 포용적인 현재성을 지닌 자연과 경쟁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그는 그의 사진을 훼손해 가면서까지 지구촌의 인간이 생활을 영위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댐을 건설해야하고 자연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필연성을 나타내려고 했으며, 더욱 심해진 이해관계의 갈등에서 비롯된 긴장상태로 말미암아 사실상 그의 이상과 사진 표현은 풍자적일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의 사진은 기술적 신호를 신중하게 나열하여 초자연의 힘을 시사하는데다 너무나 강력하여 아름다움 그 자체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고 세상과 자연 그리고 현실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존팔 자신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전부터 파워 플레이스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낡은 미국의 풍경화 속에 빌딩이나 공장, 댐 등을 그리는 것을 보고 찍게 되었다. 파워 플레이스에는 크게 두가지 뜻이 있다. 전자 공학을 사용한 에너지와 풍경이 가진 특유의 힘이다”

 

궁극적으로 테크놀로지에 대한 경종이라고 하여도 존팔은 사회적, 도덕적인 문제와 심미적인 과제를 구별하지 않았다. 인공과 자연도 구별하지 않았다. 아름다움과 참혹함을 합쳐서 사진으로서 흡수해 버렸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진은 우리들의 마음을 도려내는 듯한 장렬한 힘으로 침투해 오는 것이다. 우리는 그 작품들로부터 다가오는 힘을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냥 느끼면 되는 것이다. 또 그의 사진은 극적이리만치 빛을 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감상적인 묵시록도 아니고 형이상학적인 풍경도 아니다. 형이상학적 공간이 나타나 있다고 한다면 풍경이 아름다움과 빛을 경험시켜주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작품은 낭만적이고 그것이 우리의 현실적 풍경의 참된 모습인 것이다.

 

나이아가라 대학교 미술관에서 1986년에 발표한 나이아가라 강과 이리호에서 온타리오 호까지의 폭포들 이라는 주제의 전시회 사진에는 자연이 갖는 원초적인 아름다움과 문명과의 이해관계 그리고 역시 자연의 훼손에 대한 은유적인 시각이 서려있다. 여기 전시되었던 사진들은 나이아가라 폭포의 원류가 되는 이리호로부터 온타리오호에 이르기까지 그 원류와 지류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오늘날 수자원이 우리들 생존 또는 경제적 생활 환경과 직결되어 국내외를 막론하고 중요한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는 시접에서 나이아가라 강을 주제로 선택했다는 사실은 누구로부터도 공감받을 수 있는 행동이었다.

 

이전의 사진들에서 그랬듯이 그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 인간들에 의해 형성된 부조물 즉, 건물, 교량, 도로, 발전소, 도시들을 내포시키고 있다. 자연 풍경 속에 어울리지 않는 이들 부조물들을 배치함으로써 그는 인간의 미래를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공해를 일으키는 요소들은 아름다운 화면에 묻혀버려 풍경사진을 아름답게 만드는 사소한 장식물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린 요소이지만 머지않은 장래에 인간을 좀먹고 지구촌을 공해로 찌들게 하여 붕괴시키는 위험을 초래할지도 모른다는 예견과 그렇게 되고 말 것이라는 암시도 함축하고 있는것이다. 그는 풍경을 단순한 서정적인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표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서정적 아름다움의 이면에 서려있는 시대적인 풍자성과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위기에 대해 편견없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의 사진이 구석구석까지 어느 한 구석도 빠지지 않고 명쾌하게 정보를 전달한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그가 사진 촬영의 기술적 측면에서도 뛰어난 작가라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그는 4X4인치 중형 카메라에 90mm, 135mm, 250mm 후지논 렌즈와 커머셜 엑타 렌즈를 사용하며 필름은 코닥 베리컬러S를 사용한다.

 

 

② 리차드 미즈락 (Richrd Misrach)

미국은 ‘자연파괴’에 의해서 발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사막도 예외는 아니다. ‘뉴 칼라’로 일컬어지는 사진가들 중 많은 수가 사막지대를 주된 소재로 하는 서부의 경관을 사진작품으로 찍었다. 그중에서 가장 강렬하게 보여지는 사진가가 리차드 미즈락일 것이다.

사진계에 리처드 미즈락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74년 그의 최초의 사진집 “텔레그라프를 통해 본 오전 3(Telegraph 3.a.m)”출판 이후이다. 이 책의 출간으로 미즈락은 사진계에서 크게 반향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의 발전 가능성에 기대를 걸게 했다.

이 책은 자신이 공부했고 반전시위에도 가담했던 바구레의 캠퍼스 주변 사람들을 2년간에 걸쳐 촬영한 성과가 결집된 사진집으로 격동기인 60년대에 대한 도전장이라 할 만하다.

이 사진집으로 미즈락은 1975년에 웨스턴상을 타게 되는데 25세의 젊은 사진작가로서는 뜻밖의 수상이었고, 예술작품인 사진이 사회변혁을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예술과 정치적인 주장은 공존할 수 없다”고 결론짓고, 어느쪽을 택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결국 예술 쪽을 선택했다.

그로부터 일년뒤 그는 사진의 여러 가지 실험적 측면에 몰두하며 사진에 조색기법(, 선인장 등을 찍은 흑백사진들을 불가사의한 녹색조의 사진으로 변화시키는 기법)을 가미하게 되었다. 변혁기에 들어선 그의 모교와 보조를 맞추어 그 자신도 변해갔다. 한때는 학생폭동의 거점이었던 모교의 학생들은 무기를 버리고 동양사상이나 자연주의에 공명해서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기울어졌다. 그는 윌리엄 이지, 윌리엄 크레이그, 카를로서 가스다 등의 환상적인 문학에 영향을 받아 도시생활을 등지고 서부 사막지대로 나가게 된다.

그는 밤중에 사막을 흑백사진으로 촬영하여 작화한 후 조색했다. 1975년부터 장래성이 보이는 사진 연작물을 찍기 시작하여 1979년에는 이들 작품을 묶어 미국 국회도서관에서 사진집으로 출간했다. 이들작품들은 플래시나 장시간 노출로 풍경을 묘사하여 6X6인치 크기로 영상화한 사진이다. 사막 사진은 밤의 관능적인 느낌이 드는 대지와 바람이 있는 추상화된 영상인데 거기 서 있는 선인장은 괴물처럼 우뚝 솟은 느낌을 준다. 그는 촬영 장면으로 거석의 신비로운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느낌이 드는 것을 설정한다. 현대라는 정황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해서 영겁의 시간과 그곳에 숨어 있는 그 무엇을 영상으로 표출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80년대 초 그에게는 새로운 전환기가 찾아왔고 그는 사막으로 다시 들어가게 되었다. 이번에는 새로운 방법론으로 작품 경향을 변모시켜 나갔다. 우선 촬영 시간을 주간으로 한정짓고, 일보 더 전진해서 8X10인치 카메라로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풍경사진, 즉 스케일이 큰 풍경의 개관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그가 만들어낸 작품은 19세기 초엽의 미화된 풍경사진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하이네 반하임의 말을 빌면, 미즈락은 인간에 의해 상처입은 황야를 촬영했다고 본다. 그의 사진을 보면 어딘가의 변두리, 인간의 족적, 상처입은 흔적 등 하늘에 맥주병이 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오늘날 서부는 개발되어 사람이 살고 이용한다“는 말처럼, 하여간 아름다운 자연이 남용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미즈락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올바로 전하기 위해서 컬러로 사막을 촬영하여 몇 개의 그룹으로 분리하고 그 전체를 하나로 묶어서 <사막편>이라고 명명했다. 지금까지 이 계획에 의한 작업에는 인간과 풍경을 묘사한 12편 이상의 연작 사진이 포함되어있다.

그중 일부는 “사막의 바다”와 같은 문구로 미화시키기도 했다. 하늘과 대지의 미묘한 광선을 나타내는 수면 같은 모래의 색은 어딘지 추상적인 색상인 듯한 느낌을 주는데 내해의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은 사막의 혜택을 상징하는 것이라 하겠다.

 

1987년에 출판된 사진집 “사막의 노래”에 4장으로 분류되어 수록된 그의 사진은 사진계에 상당한 논의를 불러일으킨 작품이었다. ‘지형, 사건, 범람, 화염’이라고 이름 붙여진 제 1장은 그의 시점이 비상학 pr적이고 강렬하게 표현되고 있는 환경 오염실태를 고발한 사진이다. 이 밖의 사진들은 어딘지 묵시록적이며 시적 감흥이 간도는 사진들이다. 위에 열거한 제목들을 보면 마치 성서나 신화 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986년부터 1987년까지 촬영된 강한 호소력이 있는 그의 사진은 <브라보20사격장>이다. 네바다 사막에서 정오의 뙤약볕 아래에서 촬영한 것으로 산탄과 불발탄, 바괴된 전차, 달표면처럼 울퉁불퉁한 사진은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 군인들로 인해 불법으로 황폐화된 증거를 제시해 준 것이다.

 

동물의 잔해가 유기된 사진 모음인 <구덩이>는 더욱 극적인 사진이며, 이것 또한 문명으로 인한 환경오염을 고발한 사진으로 추론할 수 있다. 서부 평원에 깔린 소의 뼈들은 현대사회를 풍자한 사진으로서 50년대에 방사능에 피폭되어 죽은 수천의 가축들이 남긴 뼈의 일부로 생각된다. 미즈락은 이것을 찍어 증거로 남긴 것이다.

 

이러한 사진들은 그가 사진에 입문할 때에 고민했던“예술과 정치는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다시 상기시킨다. 미즈락은 이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물론 자연이 주는 광선과 아름다움을 탐구하며 나 자신의 사진을 찍지만, 정치적인 의미가 전혀 없는 사진만으로 빠져 나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열기 가득 찬 바구레의 학원가로부터 황량한 사막에 이르기까지 미즈락의 작품속에는 자신이 몰두하는 환경에 대한 탐구가 지속되고 있다. 우리는 그가 찍은 사진이 풍경사진이라 하더라도 도전적인 현대 사진가의 칼날 같은 시각이 도사리고 있음을 감지 할 수 있다.

 

③ 로버트 스미슨 (Robert Smithson)

Smithson 1970년에 제작한 그의 Earthwork( the Spiral Jetty )때문에 유명하고 잘알려져 있다. 그는 물론 1964-1973의 여러 해 사이에 예술의 전설적인 부류들에게 도전하였던 그의 비판적인 집필들을 위해 유형 또는 재료에 의해서 제한되지 않았던 그의 기공 예술의해 국제적인 인식을 얻었습니다. 그의 예술과 집필은 30년보다 오랜기간 동안 조각 그리고 예술 이론으로 깊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는 현대 예술의 미술관과 박물관와 같은 곳의 주요한 수집가들에게 두드러지게 특색지어진다.자제한 내부는 범주들에 연대순으로 정열된 일의 선택입니다, 그는 졸업후에 콜라주와 언어 적 드로잉들로 1961년에 시작하여 ,그의 상징적인 작업들은 종이, 투명한 구조들, 비논리,earthworks , 사진 그리고 필름에 영향을 미친다.

 

... 예술가는 찾는다....현실이 조만간 소설은 모방할 것을. "예술의 근처에서 언어의 박물관으로부터 " Robert Smithson, 1968.

 

21세기의 30년이라는 시간동안 로버트스미스는 그 세대의 예술가들에게 주요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독창적인 예술가중의 하나로 남았고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그의 복잡한 사상은 많은 도로우잉이나 프로젝트, 조각, 대지예술, 영화, 그리고 논평등의.형식들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스미슨의 자극적이고 발전성있는 작업들은 70년대초에 조각의 어법을 재정의 하며 만들었다. 그는 earthworks 혹은 land art로 알려진 예술 형식의 창설자들중의 하나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Utah주의 그레이트솔트 호에서 위치한 the Spiral Jetty(1970)의해알려져 있다.

이 기념적인 earthwork Smithson e Great Serpent Mound(남서부 Ohio에서re-Columbian 인디언 기념비)을 보았을 때 힌트를 얻었다. 그의 earthwork들은 형식적인 대상물로 하여금 갤러리 한부분에 놓여지도록 하는 것으로부터 반발하는 출발이었다.

Smithson earthwork은 풍경을 전적으로 독창적인 개념의 정의를 내렸다. 이러한 것으로 만족하지 않게 되어서, Smithson은 예술의 어느 것 형식 또는 스타일에 그를 제한하지 않고, 그는 형식주의를 포기하는 것과 규칙 그리고 전통적인 예술 재료까지 근대사상의 연금술사들의 경향들의 반대편으로 움직였다. Smithson의 일생의 작품은 (예술가 그리고 작가로서) 집단에 도전하였고 쉽게 분류될 수 없었는 작업을 생산하였다. 그는 전통적이지 않은 물질 예를 들면 언어, 거울, 지도, 덤프트럭, 채석, 호텔, 그의 과격한 조각,사진,필름, earthworks등으로 표현하였다.

그의 작업은 1964년에 시작한 미니멀리즘의 시스템으로부터 떨어져서 방향이 바뀐 minimal-like 구조들로 나타났습니다.

 

④ 존 섹스턴 (John Sexton, 미국, 1953 )

'자연사진가'로 불리는 존 섹스턴(John Sexton)이 사진에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것은 국민 학교 때부터 이었다. 섹스턴의 열 번째 생일날 선물로 받은 코닥 호크아이 127박스 카메라로 성 페르난도 교구를 주제로 삼아 촬영할 정도였으니 어렸을 적부터 사진에 대한 남다른 애착심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고등학교 때 사진교실에 처음으로 등록했고, 그의 집 다락방에 엉성하기는 했지만 자신만의 작은 암실공간을 만들 정도로 사진에 투자를 하였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에는 상급 음악학교에 진학을 하였지만 사실 그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은 음악가가 아닌 전문 사진작가였기에 이내 진로를 바꿔 사이프러스 대학 사진과에 입학하였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자신이 가장 원하는 일을 한때 가장 즐겁게, 열정도 쏟아 부을 수 있는 여력이 생기는 것이 아닐까? 존 섹스턴에게 있어서는 그 일이 사진이었던 셈이다.

1973년봄……. 섹스턴은 파사데나 예술 박물관에서 열린 사진전을 통해서 안셀 아담스(Ansel Adams), 에드워드 웨스턴(Edward Weston), 윈 벌록(Wynn Bullock)의 사진들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담스나 웨스턴의 사진들은 이미 많이 보아오던 터였고 벌록의 사진은 처음 접하게 되었다. 여기서 본 벌록의 살아있는 듯한 사진에 매료되어 결국 섹스턴의 사진세계를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된 셈이었다. 또한 안셀 아담스가 강연하는 강의에도 참가했을 뿐더러 친구와 함께 아담스의 요세미데 워크숍을 신청하여 섹스턴의 사진세계에 영향력을 한껏 불어넣어준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이는 완벽한 강사진의 교육과 함께 지칠 줄 몰랐던 섹스턴의 열정이 결합되어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 그의 나이 20살 된 해였다. 누구하나 그의 사진을 혹평하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매일 밤 다른 강사에게 자신의 포토폴리오를 보여주는가 하면, 집에서는 부모의 허락도 없이 차고를 뜯어 새로운 암실을 근사하게 만드는 열성까지 보이자 아버지도 그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이제 섹스턴의 다락방 작은 암실 대신 베셀러 4×5 확대기가 놓인 작가로서의 손색없는 암실을 가질 수 있었다.

섹스턴의 지칠 줄 몰랐던 사진에 대한 노력과 열정 덕분에 그의 원대로 1978년에 아담스의 개인 워크숍 보조자가 되었다. 그 후 10년이 넘게 안셀 아담스를 옆에서 꾸준히 워크숍을 보조했고 관리했다. 보조자로 일하는 동안에도 착실하고 열심히 배우며 자신만의 사진세계를 닦은 것이 인정되어 1979 3 10일에 안셀 아담스가 칼멜로 섹스턴을 초청해서 전임교수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하여 그는 오웬스 계곡의 워크숍 관리자가 되었으며, 대학에서 사진을 강의했다. 섹스턴은 안셀 아담스가 세상을 떠났던 1982 10월까지 아담스를 위해 꾸준히 일했으며 아담스가 죽은 후에 아담스의 사진 판권 신탁관리를 맡길 정도로 아담스의 믿음직스런 오른팔이었다.

 

몇 년 동안 아담스 옆에서 조수역할을 했던 섹스턴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아담스의 사진기술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에드워드 웨스턴이 가지고 있던 구성력과 함께, 1973년의 사진전을 통해서 알게 된 윈 벌록의 신비로운 작품 경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섹스턴만의 고유한 색을 지닌 또 다른 사진세계를 구축하였다. 특히 벌록이 표현하였던 장시간 노출로 인한 흐르는 물의 신비감 등이 섹스턴에게는 움직임 없는 정적인 대상으로도 충분히 살아있는 듯한 신비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데 큰 몫을 하였다. 이와 같이 살아있는 듯한 표현방식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이는 섹스턴의 가장 큰 사진 적 특성으로서 해가 지기 바로 전 늦은 오후쯤이나 되어서 다른 사람들의 경우 사진작업을 마치고 철수할 무렵쯤 해서 카메라를 메고 사진촬영에 들어가는 것이다. 해질 무렵부터 해가 완전히 질 때 까지 고요한 빛이 남아있는 시간에 오랫동안 노출을 하도록 셔터를 Long Time으로 줌으로써 노출 over나 노출 under가 되지 않고 모든 부분에 노출이 맞아 들어간 것이다. 이와 같이 긴 노출방법이 아마도 섹스턴이 사진을 '찍는다'란 표현대신 '만든다'라도 했는지 이해가되는 부분이다.

또 다른 특성으로는 다른 사진작가들처럼 노출 걱정으로 인한 브라케팅 같은 것은 없었다. 다만 같은 장소에서 같은 노출로. 즉 똑 같은 사진을 여러 장 찍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현상을 조금씩 달리하여 좀더 완벽한 수준의 필름을 만들기 위함이다. 사진을 찍을 때만큼이나 현상이나 인화과정에서 수없이 변화될 수 있는 것이 사진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의 모든 특성을 나타내는 근본적인 요소는 그의 완벽한 프린트에 있는 것이다. 사실 프린트의 톤과 계조의 미묘한 차이는 섹스턴 사진의 생명이고, 성숙된 시각과 신비함이 내포되어 있는 자서전적 순수 예술 작품을 이루는 요소이다

 

섹스턴은 10년이 넘게 안셀 아담스의 옆에서 그의 작업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아담스의 사진세계에 영향을 받은 것은 당연한 결과처럼 여겨지나 섹스턴은 아담스 작품의 모방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또 다른 영역을 구축한 것이다. 섹스턴의 사진을 보면 아담스와 같은 풍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섹스턴은 아담스처럼 장관을 찍지는 않는다. 안셀 아담스와 존 섹스턴은 기술용어를 함께 나누고, 자연 세계에 대한 관심사와 완벽한 프린트를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공통된다. 그러나 그들의 시각적 아이디어는 쉽게 구분된다. 안셀 아담스의 유명한 작품들은 훌륭한 풍경을 장엄하게 표현하고 있으나, 존 섹스턴의 경우에는 세세한 부분들의 묘사를 더욱 강조한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존 섹스턴의 사진은 보통 풍경사진으로(특히 숲을 주 배경으로 하여), 흑백 사진이며, 고요한 빛으로 만들어진 그런 것이다. 존 섹스턴의 사진은 풍경사진의 전통 안에서 독특한 양식과 탁월한 시각적 감각을 보여주는데 카메라를 다루는 테크닉, 암실 테크닉이 모두 뛰어났으며 이를 위한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난해한 빛을 읽는데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는데 주안점이 있다. 그의 사진은 한마디로 '빛의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대상의 내부에서 빛이 나오는 것처럼 신비로움이 느껴진다. 고요한 빛으로 인한 아주 긴 노출로 촬영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선명한 사진들……. 이러한 느낌들은 아무리 글로 표현한다고 하여도 느끼기 어려울 것이다. 섹스턴의 작품을 몇 점만 보면 살아있는 듯한 신비한 나무, , 바위 등을 직접 느낄 수 있을 것이다.

 

 

⑤ 로버트 도슨(Robert Dawson)

로버트 도슨의 사진은 지구촌의 이 놀라운 절망, 자연에 대한 존경과 개탄을 익살스롭게 혹은 날카롭게 우리들에게 호소하고, 접근시키려 한다.

그는 지구의 이런 모습은 지구촌 모든 인간의 행위의 결과라는 점을 일깨우고, 이 황폐한 토지에 대해 개개인 또는 집단에게 문제를 제기하고 반성을 촉구한다.

로버트 도슨 (Robert, Dawson) 1950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새크라멘토에서 출생하였으며 대학시절에는 심리학을 전공했다. 1979년 샌프란시스코 주립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할 때 창조적 예술(Creative Art)을 공부했는 데 도슨은 이때부터 사진이라는 예술에 접근한 듯하다. 그는 1980년부터 1992년까지 미국,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등지에서 개인전을 5회나 개최했고 그룹전 참가회수도 1980년부터 모노 레이크(Mono Lake), 무제 작품84(Untitled Work No. 84), 현대미국사진 I (Contemporary American Photographers I), 서부의 새로운 사진전, 명백한 운명 ? 불안정 미국 농가전 등 10여회에 달하고 있다.

로버트 도슨의 사진은 우리 사진인들로 하여금 미국 서부로의 여행을 꿈꾸게 한다. 미국 서부 지역은 200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에 이루어진 미국의 성공과 실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19세기 미국의 사진첩에서 볼수 있는 것처럼 워킨스와 오설리번 등 서부 개척 시대의 유명한 미국 사진작가들은 인간이 달성란 빛나는 성과와 흔적, 대자연의 아름답고 웅장한 경관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러한 경관들은, 오늘날 누구나 눈으로 보고 그 변화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변모 하거나, 농토로 개간되어 경작되거나, 트렉터에 의해 파헤쳐져 원형을 잃어버렸다. 지형도 본래의 모습을 훼손 당해 자연이 가졌던 고유한 아름다운도 상실되어 가고 있다. 이 문명의 이기에 의한 '성공'은 자연의 재해가 되었으며 야생의 비경은 오염되 쓰레기로 가득 차서 오물덩이로 변모되어 가고 있다.

로버트 도슨의 사진은 지구촌의 이 놀라운 절망, 자연에 대한 존경과 개탄을 익살스롭게 혹은 날카롭게 우리들에게 호소하고, 접근시키려 한다. 그는 지구의 이런 모습은 지구촌 모든 인간의 행위의 결과라는 점을 일깨우고, 이 황폐한 토지에 대해 개개인 또는 집단에게 눔제를 제기하고 반성을 촉구한다. 도슨은 인문 지리학자의 시각과 환경 보호론자의 마음으로 사지을 촬영한다. 그의 작품은 역사성과 시대성을 중시하면서 동시에 놀라울 정도로 명쾌하게 안건아 지향해야 할 미래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안내자가 되기도 한다.

로버트 도슨이 충경사진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79년의 일이다. 정신병원에서 기록 사진 촬영을 마친 후에 인적이 없는 사막과 호수의 아름답고 평안한 풍경에 매료된 때부터 그는 풍경사진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4년간 그는 캘리포니아 주의 북쪽 내륙지방에 위치한, 수만년 전에는 바다였으나 융기하여 산호초의 일부가 수면 밖으로 나와 오랜기간 풍화되어 석회질의 기암 괴석이 많이 있는 모노 레이크라는 호수를 중점적으로 촬영하게 되었다. 호수 위의 돌출한 이 기암괴석은 갖가지 추상의 탑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도슨은 처음에는 사막 한복판에 있는 호수 위에 치솟은 석탑모양을 한 괴것의 추상적인 형테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으나, 차츰 그의 캄[라는 위기를 맞은 호수의 환경과 같은 정치적 문제로 시각을 옮겨 갔다. 모노 레이크는 강 상류에 있는 로스엔젤레스 시의 팽창과 그에 비례해 늘어가는 도시 개발로 인해 유입되는 강물이 호수의 생태계를 급속히 파괴하게 된 상황때문에 도슨은 물론 환경 보호론자들도 들고 일어났던, 환경보호운동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그런 호수이다. 긴 안목으로 볼때 이러한 사태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수립되지 않는 한 자연 생태계의 균형은 깨어져 악순환이 거듭될 것이다.

도슨은 브룩스 대학에서 만든 베리와이드 카메라를 사용하여 좌우가 넓은 파노라마식 화면을 구성한다. 이렇게 하여 그는 광활한 분위기에 걸맞는 풍경사진을 촬영하고, 넓은 대지의 이미지를 강조했다. 특수필터를 사용하여 원하는 이미지에 맟추었으며, 작화과정에서더 젤라틴 실버 프린트 기법으로 금속성 은색의 발색을 강조하고 땅을 고귀하고 화사한 빛으로 표현하여, 그의 주제를 강조한다.

도슨이 기대하는 것은 그의 사진에 의해 문제점이 표면화되어 호수의 오염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크게 고취되는 것이다. 다음 작업에서는 정책적인 색채가 더욱 농후하게 되었고, 이와같은 파괴된 환경 여건에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대표하는 사진은 <무제 ? 작품20 (Untitled Work No. 20)> 이다. 화면 복판에 인공적으로 파헤쳐진 연못이 눈으로 덮여 있는 데 저 멀리 뒤쪽으로 모노 레이크 호가 한 화면 속에 들어가 있는 사진이다. 이 사진에서 도슨의 시점은순수한 의미의 풍경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에 의해 변형된 자연과 환경의 변화에 초점을 맞추었는 데 이 사진은 다음과 같은 두 성향의 사진을 예고하는 전주곡 같은 사진이다.

<모노 레이크> 연작사진을 촬영하면서 환경오염 사진으로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경험한 그는 서부의 다른 환경과 인간과의 관계를 상호 연계하여 지역별 자원 문제에 착안하게 되었다.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갖는 풍경관, 풍경에 대한 전톤적인 정의에 도전하게 도는 것이다. <모노 레이크> 사진에는 눈을 즐겁게 하는, 어찌보면 한번도 인간의 발이 닿은 적이 없는 우주의 어느 별과 같은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있고 또 옛날에 앤젤 애담스가 가졌던 것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옹호하는 환경 보호론자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시각이 드러나 있으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캘리포니아의 그레이트 센트럴 계곡처럼 잊혀진 풍경도 있다. 도슨의 말에 의하면 모든 미국인이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요세미데 국립공원, 타호 호수, 시에라스 계곡, 킹스 캐논 등은 다른 지역에 갈 때 누구나 통과해야만 한다는 중요한 경관이다.

로버트 도슨과 스테픈 존슨(Stephen Johnson)은 둘 다 광대한 농업의 중심지대에서 출생하여 성장했기에, 급속히 변모하는 정원 풍경을 계획적으로 기록할 것을 결의했다. 그들은 작업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자료를 조사하고, 이 분야의 전문가를 만나고, 역대 유명한 사진작가들이 계곡이나 서부를 촬영한 작품들을 열람하기도 했다. 19세기에 활동했던 캘톤 워킨스(Calton Watkins), 티모시 오설리번(Timothy O'Sullivan)등의 풍경 기록 사진작가와 드로시오 랭(Drothea Labge)이나 농업 안정국 소속 사진작가들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 인간에 의해 변형된 풍경을 왜곡하지않으며 중립적인 외관을 드러내는 것을 작업의 주요 목표로 삼는 새로운 지형학적 사진의 사진작가들인 로버트 애덤스, 루이스 발츠, 니콜라스 닉슨, 스테픈 쇼어, 핸리 웨슬2, 조 딜, 프랭크 골크, 번 엔드 힐리아 베커, 존 스코트 등의 9명의 사진가즐 중에서 특히 로버트 애덤스나 루이스 발츠와 같은 사진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한 문화 지리학자인 J. B. 잭슨과 농업환경 보호자인 웬들 메리등에게서도 영향을 받았다. 경국 그의 사진은 변모하는 풍경의 모습을 그대로 대변하는 사진인 것이다.

<대규모 협동 농장(Large Corporate Farm)>, <쟁기 자국과 송전탑(Plough Patterns and Power Poles)> 같은 사진에는 지리학자적인 통찰과 환경 보호론자의 입장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그만의 독특한 시각이 느껴진다. 그가 초기에 찍었던 아믈다운 풍경 사진으로부터 이러한 사진으로 작품 경향이 얾겨진 까닭은 미국이 장기전략으로 계획하고 있는 다국적 기업 형태의 농업 경영 방법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그 계획은 자연의 순환작용과 인간의 감각을 말살하는 일이며, 농산물 유통부문만을 중시하고 또 자동화만을 추구하는 농업 정책의 모순을 지적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도슨의 <잘라진 진흙 포도원(Cracked Mud Vineyard)> <곡물창고(Storage Tank, Carcorn)>같은 작품은 미국 중남부 지역에 몰아닥친 모래바람으로 인해서 지역 전체가 황폐화되었던 30년대와 똑같은, 그 공포에 찬 재앙이 다시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도슨은 이와같이 자연에 대해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는 가 하면, <델타농장(Delta Farm)>이나 <방풍림(Tree As Windbreak)>에서는 인간 의 잣대로 볼 때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에도 눈을 돌려 작품 경향의 균형을 유지한다. 도슨은 이들 작품에 인간의 경험과 대지에 숨어 있는 은유적인 미를 직접 결부시켜 반영하고 있다.

그는 서부 일대의 여행 경험으로부터 작품 주제의 범위를 넓혀 서부 풍경과 문화에 관계되는 두텁고 깊음 다명적인 시점이 함유된 사진 촬영에 의욕을 갖게 된다. 서부의 수자원이 우리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라는 주제로 작업 계획을 세워, 물의 문제와 관련된 농업, 채굴, 자원 개발, 미국 원주민, 휴양, 환경 문제에 대한 국가의 태도가 국토와 인간에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강조했다.

이전의 작품과 같이 그의 사진 작업은 우리들 문화가 같는 근시안 적인 안목이나 지구의 자원을 무한정이라고 믿는 어리석은 믿음에 대한 도전이다. 그리하여 그의 사진의 대부분은 이러한 문제를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의 사진에는 그레이트 솔트호가 범람하여 수몰된 지역이 있는 가 하면 필요이상의 물을 상류 농경지에서 소모하여 보기 흉하게 돌출된 앨컨서스 강 하구의 강바닥이 있고, 금세기 최고의 공학적인 성과라고 자랑하는 후버댐은 복잡한 전전이나 간이식당등에 의해서 그 웅장한 모습을 잃은 채 찍혀 있기도 하다. 도슨의 비판적인 시각은 어느 한쪽에 치우친 일방적인 시각이 아니고 균형감각을 중시하며 표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라혼탠의 특별 거주 지역에서 낚시질하는 인디언 원주민, 피라미드 호에서 소풍을 즐기는 사진이나 마이클 산의 온천수에 들어가 즐기는 사진이나 콜로라도 강의 상류에서 사진을 보는 사람같은 사진에는 촬영자나 피사체를 보는 관찰자로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균형을 중시하는 그의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그이 사진은 복잡하며 여러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미국 서부 풍경의 역사를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서부를 새로운 개척자들의 땅이고, 무진장한 자원의 보고이며, 자기 주장을 할 수 있는 장소이고, 속박이 없는 토지라고 생각한다. 도슨은 풍경사진으로서의 이미지의 균형 유지하면서 인간적인 시점으로 대상인 자연을 보는 시가을 가진 사진작가이다. 그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은 진실만을 말한다"는 진리를 또 한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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