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
신은 인간에게는 아주 특별한 능력들을 주셨는데, 사고하고 창조가 가능한 존재로 만드셨다. 예술에서 무엇을 창조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창조자와 같은 복제의 결과 신과 같은 운명을 가진 인간의 굴레인 것이다. 인류는 창세기부터 지구라는 세상이 만들어진 것처럼, 우리 모두 태초에 아담에서부터 지금까지 시뮬레이션 실험체 같은 존재이며 거스를 수 없는 시스템 사이클에 놓여 있는 존재들이다. 이 세상의 만물을 보면 인간의 입장이기는 하지만 인간은 세상에 군림하는 존재로써 만들어졌으며,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나름 시대적인 배경과 사건과 시공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가 주장했던 것처럼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우리 인간은 시공간을 살고 있는데, 모든 인간은 한시적으로 살다가 어디론가 초월적 시공간으로 여행을 떠난다.(사후세계) 그러니까 우리는 현제 시공간에 같이 존재하지만 언젠가는 세상에서 거역할 수 없는 죽음으로 먼지처럼 흩어지고 사라지는 존재들인 것이다. 나는 우리 소유의 산들의 땅을 보면서 늘 생각한다. 언젠가 멀지 않아 내 육체는 이 산에서 묻혀서 썩어 없어질 것이다.(영원할 것 같았던 육체는 곧 시뮬레이션처럼 사라짐)
가령 임사체험을 보면 당사자인 나는 시공간 장(필드)이 열리며 순간 무엇을 보게 되며 어느 장소에 거하게 되는데, 현제 세계에서 혼이 물리적 공간을 이동하는 개념이 아닌 즉자적으로 눈이 뜨이는 형태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장에 들어 간 임사자는 나 주체는 현실 세계에서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의 몸이 동시에 느껴져요. 긴장한 탓에 몸에 땀이 나거나 손과 발에 힘을 주어서 미세하게 떨리는 것조차 체험을 하는 동시에 느껴져요.(개인적 체험)
그러니 결과적으로 혼이 머무는 초월적 세계는 사실 살아있는 인간으로서는 어떤 말을 쓴다고 한들 논리적 설명이 불가해요. 물론 단순하게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단순한 기독교적 진리가 있지만, 그곳이 물리적으로 우주의 북극성인지 또는 땅 밑에 용암이 흐르는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설명으로 따지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왜냐면 아직까지 인간은 이것을 물리적 공간에서 찾으려 했지만 찾지 못했어요. 고대의 철학과 많은 사상도 마찬가지예요. 결국 죽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세계는 보이지 않아요.
[창조론 예술론의 굴레]
예술은 그 누가 만들어야 비록 탄생하는 것처럼, 세상의 만물도 똑같은 이치로 창조자의 의도로 만들어진 세상인 것인데, 어떻게 이렇게 단순한 이치를 모르고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죽고 있는지 답답하다. 예술을 하고 무엇을 창조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창조자와 같은 굴레를 진 인간의 운명인데.. 이 세상이 무한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예술적 창작행위들이 어떻게 보면 무의미하고 헛발질처럼 느끼는 것은 저만이 아닐 것이다. 물론 다른 생각을 가진 무신론자나 인본주의자와 인류 과학에 심취해 있는 모든 인간들은 세상을 다르게 보기 때문에 뭔 개소리 하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본 다는 것은 그저 나타나는 현상은 어느 것 하나도 스스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며, 아무런 의미 없이 만들어지고 생성되고 지속되지 않는 것을 세상을 살다 보면 알고 느끼게 된다.(세상의 이치) 세잔의 경우는 바로 그런 원초적인 생명의 근원인 자연을 통해 어쩌면 이 세상의 본질을 보려 하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 실제로 신학자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자연에 꽃과 나무와 풀들 등 모든 생물들은 늘 창조자의 섭리에 경외하며 SUN을 우러러보며 찬양한다고 한다.(믿기 힘들지만)
인간의 존재 의미는 아담 탄생 이전부터 미리 계획된 시나리오를 통해 만들어지고 시간 공간을 살고 있는 불안전한 존 제로 살면서 세상에 테스트 받으며 살아가는 신학적 해석이 비교적 정확하게 맞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인간과 마귀를 같이 둔 것처럼, 애초에 선악의 굴레에 탑승한 존재로써 천사와 인간들의 모두 인류의 대서사를 만들어 가는 굴레에 속한 것이다. 실제로 영적으로 천사와 악마는 세상에 풀어져 있고 역사적으로도 많은 일들을 하는데, 하지만 인간을 이것을 볼 수 없고 느낄 수가 없는 한계적 장님 같은 존재인 것이다. 그게 전통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성부(하늘 권자에 않은 보이지 않는 아버지, 성자(행동하시는 예수님, 성신(성령의 불꽃) 본질과 인간도 신과 같기 때문에 같은 운명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사실 이것만 알아도 인간이 세상에 존재의 이유를 알게 되는 것이다.
[기록 데이터, 존재론적 예술의 속성]
세상에서 인간은 누구나 죽기 때문에, 보통 내 이름이 역사에 한 줄 남기를 원할 것이다. 보통 인간들이 한평생의 삶을 성실하게 살았다거나 하는 미담은 같은 개인사의 스토리는 지인과 가족들에게 짧게 전해질뿐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기억이라 모두 다 사라진다. 생각해 보라 약 5000전에 살아왔던 사람의 수가 밤하늘의 별빛보다 많을 것이다. 인류는 그들 모두를 기억 또는 기록하지 못할 것이다. 한 무신론자가 코앞에 닥친 죽음을 느끼고 어둠으로 사라진다고 두려워하고 좌절하고 있다면, 종교적 내세가 있다고 믿고 한평생 따르는 자와 차이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바뀌는 상황이 연출될 것이다. 안그래도 억울한 죽음인데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우리가 왜 태어났는지 기초적인 본질에 대한 질문도 없이, 개미처럼 열심히 한평생 잘 살다가 가게 되면 시원섭섭해 질꺼 같지만,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큰 공포이며 두려움이다.
데이터의 리셋 그리고 종말
성경의 대홍수 이야기는 세상을 새롭게 리셋하면서 인류의 희망은 노아의 가족에 달려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에는 기독교인이라면 알만 하지만 쉽게 예단할 수 없는 두 번째 리셋을 앞두고 있다. 새로운 땅과 새로운 몸으로 살게 된다고 성경을 말하고 있다. 곧 이 이야기는 아직까지 인류가 쌓은 지식과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자연와 생물 하늘과 땅, 천년동안 살아도 죽지 않는 몸, 그리고 새로운 땅에는 기존 에덴동산에 비해 다른 점이 죄가(사탄) 없는 세상이다.
<무의식과 초현실- 세상과 영혼의 세계>
초현실 화가들은 인간의 잠재의식과 무의식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는데, 이렇게 표현된 무의식 이미지들은 사실 명확히 설명되지 않고 애매모호한 게 대부분이다. 인간은 무의식 속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이미지들은 대게 불규칙한 무한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무의식을 인간의 지식과 언어로 설명하고 정의 내릴 수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예술가들은 이런 무의식 이미지화를 쉽게 그리는 편이다. 그에 비해 철학이나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무의식의 세계는 설명될 수 없는 수중에 잠긴 빙산과 같은 미지의 영역이고, 설명이 불가한 인간의 한계적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보통 무의식은 의식이 개입되지 않은 상태의 이미지화인데, 기존 유명한 초현실 화가들은 이런 법칙은 아랑곳하지 않고 의식과 철학적 개념을 장착해 작품을 만든다.
인간이 무의식에 분석 및 집착하는 이유는 본질(이데아)에 다가서기 위한 기본적인 본능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저는 기존 철학과 심리학에서도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무의식을 종교적(그리스도교) 판단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사실 무의식의 실체는 종교적으로 보면 그렇게 난해하지 않고 심플해진다. 그리스도교에는 영적인 세계가 있듯이 우리 보통 인간들은 이런 세계를 보는 눈이 닫혀있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다. 성경(Bible)의 요한은 원래부터 미래를 보는 능력이 있지 않았는데, 예언자로 선택받은 이후로 점차적으로 눈을 뜨게 하셨다. 성경(Bible)에서 초월자로 세상을 본다는 개념은 우리가 볼 때는 아주 미스터리하고 보일 수도 있지만, 성경에서는 아주 구체적인 상황과 여러 시대적인 인물들의 사건들의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신의 영적인 권능 대해 알아야 하는데, 이런 능력은 신의 권능을 부여해 주실 때만 가질 수 있는 것이고 권능을 주실 때는 어떤 목적이 있기에 때문에 주시는 겁니다. 천사장 미카엘(Michael)가 악을 행한 루시퍼(Lucifer)와 대적할 때(요:12:7~9) 둘 간의 힘의 차이를 극복할 권능을 신에게 잠시 부여를 받았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내리는 수태고지와 욥의 울타리(욥기 1~3장) 이야기를 보면 영적인 존재와 미지의 세계는 생각보다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현존하는 우리의 세계와 맞닿아 있는 것을 알게 한다. 단지 우리 인간은 이것을 볼 수 없고 만질 수가 없고 느낄 수가 없으니 불인식을 하고 믿지 않게 되는 겁니다.
미가엘이 요한계시록 12:7-9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
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가브리엘이 누가복음 1:26-27에 나옵니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리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
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성경(Bible)에는 세상과 영혼세계의 진리와 본질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는 세상에 대한 본질은 종교적으로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는 세상에 던져진 인간들의 한계적 상황을 해쳐가는 처한 존재며 시간 여행자 이며 신과의 관계로 봤을 때는 자녀(신부)이며 주어진 시간 안에 시련을 이겨내야 하는 존재입니다. 작가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이유는 개인의 영적 체험을 통해 몸과 영이 쉽게 분리되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며, 쉽게 생각만 하면 차원 이동이 가능한 영의 세계를 권능을 일부 부여받은 상태에서 체험을 했기에 이런 부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영적 체험은 꿈속에서 또는 정신이 깨어 있는 상태에서 모두 받을 수가 있다.) 저의 창작물의 주로 인간의 무의식과 영적 세계의 관계를 밝히면서, 미시 세계와 미지 세계가 연결 접속되는 초월적 순간들을 다룬다. 그리고 현상과 무의식이 인간의 몸, 혼, 영의 관계를 설명하려고 한다.
기타 광범위 하게는 개인의 고유한 자아 욕망들 무의식과 연결된 기억의 파편들을 제 조합 및 실험한다. (지금은 본능에 의한 추하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그리고 있는데, 앞으로는 선하고 이로운 예술로 거듭나고 싶은 바램이 있다.)